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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환난 중에 즐거워하자

by ysong 2021. 4. 6.

로마서 5:1~4절

우리는 로마서의 중심에 들어섰습니다. 로마서는 구원의 교리를 가르치고 있는 중요한 책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을 얻게 되는 길을 말씀하면서, 왜 인간은 구원이 필요한가를 정확하게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1~4장까지는 죄인인 일류가 어떻게 의인이 되었는가를 과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신칭의(믿음으로서 의롭게 칭함을 받았다)’의 교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교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믿음의 이야기를 4장에서 설명하면서 믿음은 선물이다, 우리가 잘나서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브라함의 일생을 통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곧 우리가 잘나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우리가 잘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은혜로 되었기에 자랑할 것이 없고, 교만하게 목을 곧게 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으니까 맘대로 해도 되네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죄입니다. 좋은 조건에서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우리들에게 로마서 5~8장은 예수님과 신비한 연합, 성령님의 사역을 말씀하면서 성도의 실질적인 삶에 필요한 것을 말씀합니다.

 

5:1절에 그러므로~~”1~4장에서 이렇게 이렇게 해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려야 합니다. 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서 살 수 없습니다. 의인만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화평을 누리자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5:1절부터의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은 관계의 화평입니다. 과거에는 화평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어떤 상태인지를 6, 8, 10절의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성도여러분! 화평에도 두 종류가 있는데, 정적인 화평은 환경에 의한 것이 있고, 동적인 평화는 관계의 회복으로 찾아오는 것입니다.

앞에 호수가 있고, 넓은 잔디가 있고, 그림같은 집 앞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데, 따스한 봄 햇살과 여기저기 피어 있는 꽃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묵자적인 풍경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집에서 산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생각만해도 평화스러운 생각이 들고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데 남편은 바람이 나서 몇 달째 들어오지 않고, 자녀들은 부모와 싸워서 관계가 뒤틀어졌다면 여러분들은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화평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서먹서먹한 관계에 있다면 혹시 직장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출근하기 싫고, 가정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집에 오기 싫고, 교회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1부 예배드리며 3부에 드리는 식으로 피합니다. 우리교회는 한번 예배를 드리니까 교회를 옮길 겁니다. 이처럼 사람과 불편한 관계가 있다면 피하거나 만나지 않으면 어느 정도 해결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는 다릅니다. 화평하는 관계가 안되면 어디가든 불편합니다.

시편 139:7~10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현재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상태입니까?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습니까? 아님 고집을 부리면서 긴장관계로, 말을 듣지 않아서 틀어진 관계를 지속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여 화평을 누리길 바랍니다.

 

 

1. 지속적으로 화평을 누리기 것에 대한 말씀은 2절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것은 영광 중에 계신 주님을 뵙기를 기대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고 싶어 하는 간절한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1)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화평을 누리는 방법-현실적방법

지속적인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가장 좋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죄의 문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은혜로 값없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악으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는 우리도 동참할 수 있습니다. 악은 가난, 질병, 무지, 고통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퇴치, 제거하기 일을 한다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큰일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일하니까 평화를 지속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동업하니까 손해볼일 없고, 걱정할일 없습니다. 이런 멋진 일에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청소년들이 직장을 선택할 때도 이 부분을 고려하시길 바랍니다. 돈을 많이 벌더라, 안정적인 직장이더라, 대기업이더라가 아니라 가치를 생각하면서 비전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진정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고 관계에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화평을 누리는 방법-영적인방법

기도생활입니다. 기도는 우리들의 소원을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어떻게 이뤄질까를 묻는 기도가 좋습니다. 모든 기도는 응답하십니다. 즉답, 체답, 변답, 무답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맙시다. 대화는 묻고, 듣는 것이 기본입니다. 기도는 대화인데 이 기본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물었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또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듣는 시간을 지속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화평을 누리는 영적인 방법입니다.

 

3) 이 화평은 우리들의 실수와 실패로 깨어질 수 없습니다. 그 비밀은 1(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2(그로 말미암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깨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예루살렘성전의 회장이 갈라진 사건입니다. 하나님과는 담이 무너진 사건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는 그토록 바랐던 신에게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마리아가 아닙니다.

 

요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으로 전국이 떠들썩합니다. 이번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으로 교황이 된 인물입니다. 그래서 예수회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회는 청빈, 교육을 강조하는 단체로 알려졌지만 그들은 마리아를 성모로 만드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단체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예수님과 함께 공동구세주로 여기며, 마리아를 중보자(Mediatrix = Mediator의 여성형) 라고 호칭합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에는 마리아에 대해서 신학적으로 계속 연구하는 마리아학(Mariology)이 있습니다.

 

마리아학의 주요 교리는 4가지를 보면, 1. 영원한 처녀(Perpetual virginity),

2. 하나님의 어머니(Mother of God), 3. 원죄 없이 탄생(Immaculate Conception), 4. 부활승천(Assumption) 교리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포함된 확실한 신분(precise place in the plan of salvation) Roman Catholic Mariology - wikipedia.org/wiki/Roman_Catholic_Mariology 이라고 하며 마리아를 신성시하고 거룩한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로마 가톨릭이 존재하지 못할 만큼 마리아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예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강조합니다(interwoven with the mystery of Christ).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신비로운 연합을 가진 마리아를 통해서 신비로운 기적이 일어나며 중보자 마리아를 통해서 소원의 기도가 성취된다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십자가에 천으로 된 휘장을 M자로 걸치는 장식이라고 생각되는데 그것은 일명 마리아 십자가(Marian Cross)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십자가에 마리아(M)를 동반하는 것은( 마리아 십자가 ) 마리아가 인간 구원에 함께 참여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로마 가톨릭의 사상표현입니다. M십자가가 최근 사랑의교회에서 갖은 합동-통합 기도회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혹시 몰라서 장식으로 이용했는지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릴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2. 화평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환난이 끼어들어 오는데 어떤 반응을 하느냐 3절에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환난은 press인데요, 프레스가 가해지면 그것을 버티려고 힘을 쓰고 근육이 발달하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환난과 본인의 욕심에 찾아온 환난을 구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우리가 시험에서 이길 수 있는지 다시 시험하십니다. 이 시험에서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은 1+1=1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은혜를 힙입어 성숙한 인격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성숙한 인격이란 바울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바울은 불같은 사람이고, 자신의 뜻과 맞지 않으면 싸우고, 갈라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인격이 성숙하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지속하면서, 자신에 대한 표현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자신을 사도 중에 작은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전 3차 선교여행 중에 에베소에서 사역할 때입니다.

 

에베소서 3: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고전을 쓴 이후 최소한 4년 정도는 될 것으로 보이는데,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쓴 편지인데,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자신을 더 낮추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로마감옥에서 출옥한 이후 4차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쓴 것인데, 저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격의 성숙은 바로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교회에서 나를 포함하여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철저하게 지적한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처럼 환난 중에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를 연단을, 연단을 통해 구원의 소망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환난이란 계획했던 것이 이뤄지지 않을 때 찾아오기도 합니다.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의 목적지는 에베소였습니다. 그러나 벽에 막혀서 못 가게 되었습니다. 그만 병이 들어서 못 가고 딴 쪽으로, 갈라디아로 가서 거기서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다음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으나 또 막혔습니다. 거기도 못 들어가게 하니까 이것도 아니다, 그러면 어디로 갈까하고서는 좌우간 드로아까지 가면 무슨 수가 있겠지 하면서 드로아까지 갔습니다.

가 보니까 이번에는 어디로 갈지 알 길이 없이 막막했습니다. 결국 막막함에 부딪힌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아시아에서 전도하지 말라고 하셔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더니 거기서도 전도하지 말라고 하시면 저는 이제 어디로 갑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럴 때 생각지도 않던 마게도니아의 길이 열렸습니다. 그렇게 부딪히면서 드로아로 갔을 때 문이 열린 것입니다.

 

나에게 고난이 없는 것은 고난이 찾아오기 전에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유혹이 1단계이고 고난은 2단계입니다. 예수님도 유혹을 먼저 받았습니다. 유혹을 이기고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고난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사단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을 확률아 높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는 고난 중에 즐거워하는 겁니다. 내가 바른 길을, 거룩한 길, 의의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도 됩니다. 예수님과 동행의 삶에는 반드시 고난이라는 것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살면 안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이 가데스바네야에 도착했습니다. 정탐꾼을 12명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온 후 보고를 했습니다. 정복할 수 없는 땅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백성이 밤새 울며, 기도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못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이 못 돌아가게 했습니다.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뺑뺑이 돌다가 죽었습니다.

환난이 오면 이스라엘백성들처럼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인 중에도 있습니다. 못 돌아갑니다. 뺑뺑이 돌면서 죽습니다. 환난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소망하면서 즐거워해야 합니다. 완성되는 구원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살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과 우리들이 누리는 화평을 시기합니다. 기회만 생기면 회평을 깨려고 합니다. 사단은 죄책이라는 것으로, 완변주의라는 것으로 화평을 깨려고 합니다.

사단은 죄책을 들고 나옵니다. 죄를 지면, 실패하게 되면 숨으려고 하고, 피하려고 하는 습관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사단은 자꾸만 너는 안된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하게 합니다.

개새끼도 자기가 잘못을 하면 숨어 버립니다. 이때 내가 비록 실수를 했지만 죄를 졌지만 하나님과 나의 화평을 깰 수 없다고 하면서 담대하게 하나님 앞으로 나나가야 합니다.

 

화평을 깨는 것은 완벽주의입니다. 예수님을 믿었으면 이것도 하지 말아야 하고, 저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데 안됩니다. 자꾸 안되니까 스스로 포기하고 자유를 선택한다며 피하는 겁니다.

 

이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과 화평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주어진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들의 공로나 행위가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지만 환난이 찾아온다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아프고, 실패하고, 낙담합니다. 그렇지만 환난에지지 않고 연단한 후에 이루실 구원의 소망을 두면서 좁은 길로 걸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참신자가 일생 동안 걸어갈 길입니다.

 

 

 

 

 

 

 

 

 

 

 

 

 

 

 

내가 죽은 시체였는데, 영적인 소경이었는데, 살아난 증거, 영적으로 눈이 뜬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입니다.

 

확인하는 방법을 몰라서 흔들리고, 의심하고, 심지어 구원파에 빠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오늘 간단하게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1단계는 자기가 죄인임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죄인의 위치에 서서 예수님 앞에 부르짖고 기대해야 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명을 받기 위해서 그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죄인의 자리입니다. 마치 의사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병든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가복음 2:17 “성한 사람이게는 의원이 소용 업고 병든 자라야 의원이 소용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죄인 이라는 의식이 있어야 회개라는 위치에 서 있게 됩니다.

인간론-성선설=맹자-덕치, 인치주의가 발전//성악설-순자-법치주의

성경은 인간은 영적인 선(하나님과 관계)은 없지만 도덕적인 선은 있다고 정의 하고 있습니다.

 

2단계에 구원받은 사람만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통치자입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3단계 의, 진리, 거룩함을 회복됩니다.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의 형상은 광의의 형상-도덕성, 사회성, 창조성// 협의의 형상 -, 진리, 거룩인데 타락 후 기능하지 못함-회복됨, 정상이 됨

 

구원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낙심하여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표현인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험을 볼 때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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