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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기쁨이 가득히

특이한 탄생

by ysong 2020. 12. 16.

누가복음 2: 8~14절

성탄절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오래전 통계자료이지만 뉴욕 타임즈가 판매된 성탄카드를 조사했습니다. 아기예수와 메리 크리스마스의 디자인 된 성탄의 카드는 100장에 1장 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국의 경우 유명 디자인 회사 5500장의 성탄카드를 조사했는데, 메리 크리스마스 문구가 적힌 카드는 2920, 아기예수 관련 디자인된 카드는 70장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성탄절에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서 예수님이 종적을 감춰지고 있습니다.

 

요즘 추세는 예수님 없는 성탄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메리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할러데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해피 할러데이를 사용하는 의도가 성탄을 지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과거에는 장사하시는 분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눈치를 봤는데, 요즘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심하게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예수님이 가데스바데야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로 여론을 묻습니다. 제자들이 이런 저런 정확하지 않는, 예수님에 관한 사람들의 정보를 전해드렸습니다.

 

그 잘못된 여론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하고 하느냐?” 세성이 나를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형편에 나를 따르는 제자들인데, 너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주는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제대로 된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에게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성탄절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이 온통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태어난 절기를 새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지우는 쪽으로 잘못 가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성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관심을 갖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0절에, 인류에게 가장 기쁜 소식은 11절입니다.

사람들의 기쁜 소식은 진급, 진학, 성공, 쾌유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생각하는 기쁜 소식은 일시적이고 한시적입니다.

 

아무리 진급해도 퇴직을 하면 끝나는 것이고, 진학을 해도 졸업하면 끝나는 것이고, 성공도 지속할 수 없고, 병에서 완치되어도 결국 죽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오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일시적인 건에 목숨걸지 마시고요, 영원하신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어보시기면 참된 성탄의 기쁨소식을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기쁜 소식, 변함없이 기쁜 소식은 너희를 위해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하기에 예수님을 따르고 믿는 사람에게 성탄은 11절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세주=구원자이시고, 구약에서 예언되고 약속되어진 메시아로 오실 그리스도이고, 영원한 주인도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베드로가 주님을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성탄의 참된 의미를 고백하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 칭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12절에, 짐승의 외양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겸손하신 하나님을 인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겸손치 않은 분이시라면 하나님께서 조금이라도 교만한 분이시라면 어찌 우리 같은 더러운 죄인을 사랑해 주시려고 상대해 주셨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준비를 못했을까요? 여관방 하나도 준비하시지 못하는 하나님, 산모도 미리 대비시켜 놓아야 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은 무균시설도 없고, 사람들과 접촉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리벽도 없는 마굿간만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곳은 갓 태어난 아이에게는 너무나도 비위생적인 장소였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아들을 구유에 눕히도록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눈이 오면 우산을 준비시켜 주고, 추우면 두꺼운 옷을 입히는 게 부모의 마음인데, 하나님은 너무 무관심한 모습은 아닙니까? 천사들이 선포한 기쁜 소식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환경에서 예수님은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마뭇간에서 태어난 모습을 통해 겸손한 하나님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겸손하신 하나님이 교회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백성이 사사시대를 지나면서 주변국가의 강력한 왕의 리더십을 보면서, 그들도 왕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왕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왕이 사울입니다. 그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삼상 9:2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만약 사울과 같은 인물이 아닌 준수하지 않고, 키도 작은 사람이지만 진실된 사람을 세워서 왕으로 삼으라고 했다면 그들이 과연 왕으로 뽑았을까요? 그들은 겸손한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이방국가와 싸울 수 있는 힘 있는 용사를 원했습니다.

 

100~200명이 되는 교회들이 담임목사를 세우는데 보통 100~200통의 이력서 들어온다고 합니다. 1차 서류심사에서 외국에서 유학을 갔다오지 안거나, 최소한 국내박사를 받지 않았으면 1차에서 떨어진다고 합니다. 2,3차를 거쳐 준수하고 용맹한 목사님을 세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이 있습니다. 삼상 16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용모와 키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9 “1.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8.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9.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짐승의 밥통인 구유 속에 누워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분이 구유가 아니라 용상에 누워 계셨다면 우리가 어찌 감히 그분을 먹고 마심으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2. 깊은 산 속 수도원에 은둔해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먹기를 즐긴다고 소리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먹과 마시며 함께 있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먹고 마신 음식은 왕궁에서만 먹는 진수성찬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먹는 거친 빵과 음료들뿐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으로부터 언제나 내 삶의 현장에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하나님을 만난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행전 2:46~47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와 늘 한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3. 당신께 나아오는 모든 병약한 자들을 고쳐 주신 예수님에게서 우리의 찢긴 곳을 꿰메시고 싸매시며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4. 죽은 나사로로 인해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내가 슬픔의 눈물을 흘릴 때 내 곁에서 함께 울어 주시는 다정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5. 주님 앞에 끌려온 간음한 여인을 보시고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말씀하신 주님을 통해 우리의 조리를 사해 주시는 용서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6. 예루살렘을 보고 눈물 흘리신 예수님에게서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내 민족, 내 나라,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우주적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진리 아니면 말씀치 아니하시고 진리라면 침묵치 아니하신 주님의 모습에서 진리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7.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나를 위해 그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으로부터 날마다 내 인생의 짐을 구체적으로 져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8.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락 절규하면서까지 오직 나를 향해 본능적 부성애를 갖고 계시는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 됩니다.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참 생명이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같은 진리를 가르쳐주시기 위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만이 참 평화를 주실 수 있습니다. 14절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를 주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참된 평화가 이뤄지려면 반드시 먼저 하나님과 평화가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악으로 가로 막힌 담을 허시고 화목케 해 주심으로써 하나님과 평화를 이룰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결론

성탄절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탄을 지우려는 시대는 앞으로 갈수록 심해질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성탄을 바르게 아는 겁니다. 성탄의 참된 의미를 묵상하며 하루 노는 날이 아닌 구원의 감격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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