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6~38
요즘 아쉬운 것은 우리 아이들이 따뜻한 성탄의 문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성탄절이 참 좋았습니다. 작은 시골교회에 성탄전날 밤 행사를 하면 모든 교인들이 모여 주일학교학생들의 재롱과 중고등부의 발표를 보면서 성탄을 즐거워했습니다. 그렇게 성탄전날 밤 전야제가 끝나면, 나무난로 주위로 모여 게임을 하면서 밤새 놀았습니다. 그렇게 놀다가 새벽이 되면 새벽송을 돌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시골 길을 걸어서 성도의 집에 다가가서 ‘기쁘다 구주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저어들 밖에 한 밤 중에 양틈에 자던 목자가’, “고요한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잔도 잔다”
이렇게 찬송하면 가정마다 준비한 과자, 양말, 감사헌금을 내놓았습니다. 주신 선물 보따리가 마대자루로 하나 가득 찹니다. 그러면 그것을 둘러메고 낑낑 거리면서 교회로 돌아와서 25일 성탄절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그 때는 사실 성탄절이 왜 기쁜 날인지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성탄절 분위기에 취했었던 같습니다.
진짜 성탄의 기쁨을 몰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 와서 성탄의 기쁨을 조금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30가지로 요약을 했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3. 성부 성자 성령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계시하려 오셨습니다.
4. 사탄과 귀신의 정체를 밝히시려고 오셨습니다.
5.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7.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8.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9.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10. 우리를 지옥에 가지 않게 학 위해서 오셨습니다.
10. 우리를 하나님께로 부르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11.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12.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13. 죄에 팔린 자기 백성을 자기 피로 사서 하나님께 돌리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14. 하나님의 뜻을 하늘에서처럼 땅에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15. 하나님의 통치가 사람들의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하시려고 오셨습니다.
16.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오신 목적을 알지 못하고 성탄절을 보내는 것은 마치 앙꼬 없는 찐빵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하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구약에서 알려준 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려줬습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예수님이 보여준 행동을 지켜봐야 합니다.
모든 피조세계와 관계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또 사람과의 관계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성경은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신약성경은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그 예수님이 누구를 통해, 어떻게 오셨는지를 알려줍니다.
오늘 본문은 나사렛이란 시골 동네의 한 처녀를 통해 오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오기 이전에 제사장 사가랴를 찾아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가 요한의 임신이야기를 예수님의 동정녀탄생 이전에 실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다른 복음서를 통해 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서 나타나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다는 말라기의 예언을 성취자로, 예수님을 증언하는 요한은 구약을 대표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신학적인 해석보다는 시골에 사는 평범한 한 여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어떻게 믿음으로 고백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우리들도 예수님의 동정녀탄생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누가복음 1:5절부터 25절은 세례요한의 탄생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는 제사장입니다. 어머니는 엘리사벳입니다. 이들은 자식이 없었습니다. 나이가 많아 의학적으로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마치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과 같은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오래전에 자식을 낳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13절에 “너의 간구함을 들은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자식을 포기한다고 했지만 사가랴는 마음속으로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자식을 갖고 싶어 간구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7년이 지난 어느 부부가 지난해 어렵게 임신했는데, 저에게 하소연을 하면서 기도를 부탁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가랴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식을 갖고 싶어서 기도했는데, 어느날 가브리엘천사가 나타나서 13절에 “너의 기도를 들었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인데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의 반응은 18절에 나옵니다. 그는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믿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습니까?” 사가랴는 자식을 달라고 오래동안 간구했지만, 정작 기도내용에 대해 믿기는커녕 불신했습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응했습니다. 수없이 기도하면서 기도내용을 믿지 못하는 것이, 꼭 우리가 닮은 것 같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가랴를 위해 20절에 표적을 먼저 줍니다. 그 표적은 사가랴가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 표적은 믿지 않음에 대한 하나님의 증표였습니다. 그 증표는 본인의 기대와 다른 사건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이뤄진다는 사인으로서의 표적이었습니다.
사가랴는 표적을 보고 믿음으로 아내와 동침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임신하여 이삭을 낳은 것처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믿음으로 임신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탄생한 이야기가 끝나고 곧바로 마리아가 예수님을 임신하게 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6절부터입니다.
나사렛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 살고 있는 처녀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왔습니다. 가브리엘천사는 마리아에게 임신하여 아들을 낳는데, 이름을 예수라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깜짝 놀라면서 기브라엘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찌 임신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34절은 마리아의 반응입니다.
그랬더니 35절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에게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대답해 줍니다.
성도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가브리엘 천사의 말을 들은 마리아의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말대로 된다면 누가 자신이 성령의 역사로 임신을 했다는 것을 믿어 주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부도덕한 여자로밖에 보지 않겠습니까? 율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가브리엘 천사의 말은 약혼자 요셉과 파혼의 의미합니다. 자기 생명을 내어 던지는 것을 뜻합니다. 정말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그 상황에 놓인 마리아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작은 어려움만 찾아와도 원망하기 일쑤인 우리들은 두말할 것 없이 “농담하지 말라”고 답변하지 않을까요? 아님 다른 사람을 추천하면서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받아들이기 참으로 어려움 일인데, 가브라엘천사는 36절에서 친족 엘리사벳 임신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요한에게 임신 사실을 이야기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두려워하고 흔들리는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배려와 은총입니다.
2) 늙은 엘리사벳이 임신 내용을 통해 말씀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줌으로 하나님이 마리아를 책임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율법의 돌팔매에서, 의심하는 약혼자에게로부터 구원해 주겠다고 사실을 믿도록 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이 38절입니다. “여종입니다.” 지금 하신 말씀을 믿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자신을 종으로 고백하는 단어가 바로 “여종입니다”. 절대복종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선택하겠습니다. 엘리사벳의 순종의 사건을 자신으로 것으로 돌리면서 인격적으로 아멘으로 반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입니다.
마리아는 위대한 믿음으로 살았지만 마리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마리아가 선택이 율법의 돌팔매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으로, 요셉의 파혼을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자만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없었다면 마리아를 절대로 말씀을 믿지 못했을 겁니다. 흔들리는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의 임신이야기를 통해 용기를 주지 않았다면 그는 절대로 동정녀 임신을 받아 드릴 수 없을 겁니다.
마리아는 위대한 믿음으로 살았지만 자랑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정녀 탄생에 대한 구봉서장로의 이야기 “ 지 남편이 가만히 있는데 왜, 너희들이 난리를 치느냐”고,,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가만히 있는데, 지금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것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믿을 수 있게끔 손길을 펼쳐 줌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선택한 백성에게 은총과 사랑을 먼저 부어주셨기 때문에 믿을 수 있었습니다.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00세 때 이삭을 얻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맡기고 살도록 했습니다.
2) 모세는 홍해사건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능으로 200만명이 넓고 깊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밟고 건넜습니다. 모세는 위대하신 그 하나님을 믿고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백성들을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3)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이 행진과 함성이 무너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철웅성같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을 능력을 목격한 여호수아는 제대로 훈련되지 않는 군사를 이끌고 오직 믿음으로 가나안 정복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4) 다윗은 어릴 때 곰과 사자와 싸워서 이기는 경험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면 물맥돌 하나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만군의 이름으로 골리앗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5)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핍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만을 붙잡고 믿음으로 사도행전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 밖에도 성경에는 수많은 믿음의 기적을 체험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으로 믿음을 갖게 되어 변화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평범한 시골 처녀입니다. 그가 위대한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엘리사벳의 사건을 목격함으로 말씀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자신의 것으로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의 결과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소박한 사람들입니다. 지존하신 하나님을, 성자 예수님을, 성령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조건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마리아처럼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동일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체험을 통해 믿음이 굳게 섰던 것처럼, 엘리사벳이 되든지 마리아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시길 이 아침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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