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26:24~32절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듣는 시간이어서 좋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계획을 이루시는 것이 바울만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하나님을 만나시면서 여기까지 온 줄 믿습니다.
앞으로 만날 하나님은 상상을 초월하실 것입니다.
한 개인이 살면서 겪었던 일 중에 기억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적게는 3~4개, 많게는 7~8개로 인생의 전환이 되었던 기억을 말합니다.
바울이 겪은 인생의 장면도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바울이 회심한 간증은 사도행전에 두 번 나옵니다.
중심 내용은 같지만 약간의 첨삭이 있습니다.
실제로 경험한 사건은 사도행전 9장에 나옵니다.
첫 번째 간증은 사도행전 22장인데요, 천부장 앞에서 합니다.
간증을 들은 대상은 분노로 가득한 유대인들입니다.
두 번째 간증은 사도행전 26장인데요, 아그랍바 분봉왕 앞에서 합니다.
한 개인에게 특별한 간증이 있다는 것은 좋은 점도 있지만 그만큼 고집이 세거나, 반항하거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는 간접증거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순종하는 것이 특별한 간증보다 더욱 좋습니다.
오늘 바울이 간증을 통해 밝힌 인생의 4가지 장면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은 그런 장면을 넘어왔기에 바울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줄 믿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가시채 뒷발질 장면입니다.
14절입니다.
9장. 22장에 없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바울이 여기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주님의 평가입니다.
너의 인생은 가시채 뒷발질이었다는 겁니다.
속담인데요, 작은 쇠가시가 박힌 채찍으로 소나 말의 엉덩이를 앞으로 가라고 때립니다.
그러면 소나 말이 앞으로 가지 않고 뒷발질합니다.
다른 길로 가지 말고 앞으로 가라고 하는데, 반항하는 겁니다.
바울이 교회를 진멸하려고 했던 모든 열심이 가시채 뒷발질이었다는 겁니다.
바울은 열심히 살았습니다.
다소에서 예루살렘에 유학을 와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좋은 학파에 입학하여 남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6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바리새인이 중에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그는 더 성공하기 위해 열심을 내었고, 그것이 교회를 진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가는 가시채 뒷발질이었습니다.
헛수고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가시채로 인생을 징계하는 데 쓰기도 합니다.
다윗이 죄를 범했습니다.
그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14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하나님은 죄를 범한 다윗을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시채로 쓴 인생의 채찍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고 있습니다.
갑자기 폭풍이 일었습니다.
그곳을 벗어나려고 뱃사람 출신 제자들이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그러나 배는 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폭풍을 뚫고 다가오셨습니다.
배는 다가오시는 예수님만 맞이하면 됩니다.
폭풍은 잔잔해졌습니다.
바울이 가시채 뒷발질의 이야기를 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베스도 총독이나 아그랍바 왕이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교회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나처럼 헛고생하지 말고, 시간만 낭비하지 말라는 겁니다.
바울의 첫 번째 인생의 장면입니다.
이 장면과 반대의 장면은 무엇일까요?
시편 128:1~2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남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고,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일한 만큼 수확하여서 온 가족이 함께 먹고 마시는 겁니다.
소박하지만 이것이 복된 인생입니다.
바울의 두 번째 장면은 소명과 사명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전에 두 번의 내용보다 구체적입니다.
사도행전 9:4~6절입니다.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사도행전 22:7~10절입니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사울을 부르시고, 박해하는 예수라고 알려주시고, 다메석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두 번의 내용은 비슷합니다.
그런데 3번째는 많이 다릅니다.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신 것은 같습니다.
그런데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고 말씀이 새롭게 나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혼자 일어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을 일어서라고 하신 것은 선지자로 부르셨다는 의미입니다
에스겔을 부르셨을 때와 같습니다.
에스겔 2:1절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네 발로 일어서라는 것은 부르심, 즉 소명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다윗을 부르셨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바울을 사도로 부른신 것입니다.
그다음이 사명입니다.
바울에게 구체적인 사명을 주셨습니다.
종과 증인의 역할을 하라는 겁니다.
사탄의 권세에 있는 사람을 주께 돌아오도록 하는 사명입니다.
바울을 부르신 주님은 우리를 성도로 부르셨습니다.
바울에게 사명을 주신 주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소명과 사명이 바울의 두 번째 장면입니다.
바울의 세 번째 장면은 주님을 위해 미친 장면입니다.
24~25절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에게 미쳤습니다.
바울은 구약을 연구했고, 가르친 바리새인입니다.
누구보다는 탁월한 실력을 갖췄습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구약의 모든 말씀이 구술이 꿰어지듯 하나로 연결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미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수께 미쳐서 당한 일의 몰록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절입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바울은 고생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미쳐서 이런 일을 당했지만 고생이 후회가 아니라는 겁니다.
오로지 기쁨과 감사라는 겁니다.
제가 최근 읽는 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수학적 확신’이라는 책인데요, 읽는데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함수, 집합과 같은 공식을 막 써 놓고 설명하는 분량이 6백 페이지 정도입니다.
이 책은 수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이 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서 수학을 더 많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부산의 동서대학에서 인공지능과 게임개발을 가르치고 있는데, 수학의 규칙과 한계를 통해 과학 때문에 종교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우주의 나이는 138억입니다.
이는 지구의 차원에서 계산한 나입니다.
우주는 10차원 이상이 됩니다.
차원이 달리하면 우주의 나이는 만년도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6천 년 설에 비웃는데, 모세가 본 장면을 창세기 1장처럼 쓸 수 있다는 겁니다.
수확에 미쳐서 예수님에게 미치는 분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잘 나가시는 목수이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어느날 여전도사남이 목수이신 분에게 전도했습니다.
히브리서 3:4절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집을 짓는 목수가 들으니까 맞는 말이었습니다.
집을 짓는 목수는 예수님에게 미친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수가 집을 짓듯이 말씀을 가르치시는 일을 평생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봤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떨어서 허름하고 가치도 없는 밭을 샀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볼 때 미친 짓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미소를 지은 이 사람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봤기 때문입니다.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 듣는 말이 미쳤구나입니다.
우리는 베스도와 아그랍바 틈에서 삽니다.
그들로부터 미쳤다고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미치면 일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하나님의 뜻이 보입니다.
예수님께 미치면 온전한 정신으로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 미치면 찬송하고 감사하고 할렐루야하면서 삽니다.
소명과 사명의 단계를 넘어 예수님께 미치는 단계에 접어들어야 합니다.
네 번째 장면은 나처럼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28~29절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선포한 내용입니다.
총독과 왕은 권력의 총아입니다.
그들의 말은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입니다.
부러워할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를 향해 내가 결박 받은 것만 제외하고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당신은 아무것에도 묶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은 권력에, 사람에, 화려함에, 쾌락에 갇힌 존재입니다.
나와 같이 진리를 깨닫고 나처럼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십시오.
예수 생명에 미쳐서 그 생명 전하는 일을 하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향해 같은 말을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형제들에게도 나를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3: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 나를 본 받으세요..
그대들도 그렇게 살아서 나를 본받으라고 하세요.
뒷모습이 깨끗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자녀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나보다 잘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나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나같이 되길 바란다는 바울의 말처럼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되길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나의 눈물, 겸손, 인내를 기억해 달라고 했습니다.
에베소교회 지도자들도 나처럼 성도들을 돌보라고 부탁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사랑으로 변화된 것처럼 당신들도 그렇게 변화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바울의 4가지 장면보다 더 많은 장면을 가지고 있을 줄 모르겠습니다.
바울이 넘어온 장면과 같길 바랍니다.
넘어온 모든 장면이 간증이 되길 바랍니다.
간증이란 십자가를 통과한 이야기입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은 이야기입니다.
초자연적인 빛, 눈이 보이지 않고 뜨게 됨 기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십자가에 죽은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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