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1~9
요즘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하시면 사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 운동선수, 연예인이 어떻게 될 것을 걱정합니다.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가오는 문제로 걱정하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신앙인들은 달라야 하는데 별만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달라야 하는데, 여호수아를 통해 믿음의 용기와 해결을 얻길 바랍니다.
상반기를 마쳐가고 있고, 하반기를 기대로 시작하는 맘으로 오늘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은 지도자의 부재와 또 다른 지도자 세워지는 과정에서 주신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위대한 지도자가 모세가 죽었습니다.
모세의 죽음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가 120세인데, 눈이 흐리지 않았고, 기력이 쇠하지도 않았습니다.
죽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교통사고, 화재, 재난 등 갑자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죽음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 마쳤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데리고 가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다음 임무를 부여합니다.
여호수아는 누구인가?
원래 이름은 구원이라는 뜻의 호세아였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에서는 눈의 아들 호세아요”(민 13:8)
그런데 모세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의 여호수아로 바꾸었습니다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불렀더라"(민 13:16)
모세는 여호와가 구원자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살라고 뜻으로 여호수아로 불렀습니다.
여호수아가 처음 성경에 등장한 사건은 출 17:9~10절입니다.
아멜렉과 전투에서 등장합니다.
두 번째 등장은 출애굽기 24:13~14절입니다.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여호수아는 장로들과 아론과 홀보다 모세와 함께 시내산 높은 곳까지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 등장은 12명의 정탐꾼 중 한 명으로 등장합니다.(민 13:8절)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이 주셨다는 믿음의 보고합니다.
본문의 1절의 소개처럼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종자이며 부하이며, 현장 지도자였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태어난 여호수아는 모세를 이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처럼 높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특별한 영적인 체험에 대한 기록도 없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믿음으로 수행한 군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등.
2절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가라, 그 땅을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여호수아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임무이며 사명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두려워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자신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든, 어려운 일이 맡겨지면 여호수아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걱정과 염려가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3가지를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첫 번째는 약속의 성취입니다.
여호수아 1:3~4절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미 준 땅입니다.
가나안 전쟁은 여호수아의 전술이나 능력이 달려 있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할 일은 발바닥으로 밟는 것뿐입니다.
여리고로 시작해서 중부, 남부, 북부 전투를 하지만 약속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루에 한 바퀴,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고, 소리를 질러 무너뜨린 여리고 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14년을 일했지만, 아내와 자식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랑은 얻었는데, 경제적으로 가난했습니다.
외삼촌과 임금을 협상합니다.
요셉이 얼룩무늬의 양과 염소만 자기 소유로 하겠다고 합니다.
라반의 입장에서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중동의 염소와 양은 흰색이든 검은색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튼튼한 염소와 양이 새끼를 밸 때 나무껍질을 벗겨 흰색 무늬를 내었습니다.
튼튼한 양들이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새끼를 낳았습니다.
정말로 얼룩무늬의 나무를 보고 새끼를 배었기 때문일까요?
상식적인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미신을 따랐다는 해석도 하고, 칼빈선생은 야곱이 믿음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보다 하나님은 야곱이 고향을 떠날 때 벧엘에서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부자가 된 것은 나무껍질을 벗겨서나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야곱은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일을 시작하신 이가 일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상식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몰상식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초상식입니다.
상식을 뛰어넘은 은혜입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야곱뿐만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해당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이젠 약속을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을 성취하신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으면 됩니다.
여호수아처럼, 야곱처럼 우리에게 약속한 사실을 확인하면 됩니다.
가나안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은 전쟁으로 차지하는 땅이 아니라 순종으로 얻어지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다 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승리가 보장된 전쟁입니다. 순종하면 됩니다.
여리고 전투를 비롯해서 대부분 전투는 순종의 결과들입니다.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되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환경이 아니라 약속이 먼저입니다.
두 번째는 임마누엘입니다.
5절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반복해서 하신 말씀은 너와 함께 있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을 봤습니다.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약속입니다.
가장 본질적인 약속입니다.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믿음 선조들에게 항상 약속하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 99세 때에 나타나셔서 하신 약속은 창세기 17:4절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해 피신하기 위해 삼촌 라반의 집인 밧다아람으로 가는 중에 불확실한 미래로 걱정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밤에 나타나셔서 약속하신 말씀은 창세기 28:15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서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와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이 문장은 창세기 39장만 등장하고 이후 총리가 되었을 때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총리 때도 함께 하셨지만 가장 힘들고 두려운 상황에 함께 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따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3:12절에 반드시 너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도 삼하 7:8~9절에서, 예레미야도 1:8절에서 동일하게 함께 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이 함께 하심이었다는 것을 마태복음 1:23절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하신 말씀도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겠다(마 28:20절)는 약속이었습니다.
함께 하심은 오랜 교회의 역사 속에서 항상 허락되었습니다.
가장 하나님이 필요한 시기에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
영적 승리를 보장해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 시간에 동일한 말씀하십니다.
아이가 엄마 품에 깊이 잠들고 있는 그림을 보셨죠.
우리의 안전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합니다.
세 번째는 강하고 담대함입니다.
6~9절입니다.
이 정도는 하나님을 모르는 분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도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용기를 가지는 것이 나의 결심과 결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의지가 강해서 강하고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는 것으로 나오는 강하고 담대함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겁니다.
묵상은 들짐승이 배가 고파서 으르렁거리면서 음식을 찾아 헤매는 상태, 소가 음식을 먹고 되새김질하는 것이라고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익숙한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하심을 알게 하십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할수록 강하고 담대해지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됩니다.
지난주 말씀이 안 들리면 큰일난다고 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순종한 여호수아에게 순종하는 르우벤, 갓, 므낫세지파를 붙여줍니다.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순종하기로 약속했고, 여호수아를 향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며 사는 지도자이기를 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현실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현실이 너무 크게 보이면 약속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의 약속의 땅이라는 것을 상기시키셨습니다.
약속을 보면 하나님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자꾸 두려워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경험되어진 세계관으로 세상을, 문제를, 걱정거리를 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불쑥불쑥 찾아오는 두려움은 세상의 관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믿고 순종으로 두려움을 쫓아내시길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