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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바꿔주시는 하나님

by ysong 2024. 11. 24.

창세기 17:1~8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꽤 많이 알고 계시다는 생각으로 살죠.

저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상당히 많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멀리 계신 분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분은 아브람의 이름을 바꿔주시듯 오늘 우리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오늘 나에게 나타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를 어떤 이름으로 바꿔주실까요?

어떤 이름이 나에게 적절할까?

말씀을 나누는 동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바꿔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이름을 바꿔주시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은 이름에 관계된 일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얍복강에서 하나님께 겨루며 매달리는 야곱의 이름을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으로 이스라엘로 바꾸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야곱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됩니다.

이젠 사기꾼으로 살지 말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자식의 이름에 하나님의 뜻을 전달했습니다.

이사야 8장에 하나님은 이사야 둘째 아들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고 지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급히 피하고 빨리 빼앗아간다라는 의미입니다.

 

호세아에게도 자녀의 이름에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호세아 1장입니다.

첫째 아들은 이스르엘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둘째 딸은 로루하마입니다.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세째 아들은 로암미입니다.

이젠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가는 유다의 비참한 미래를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의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 40~4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몬을 베드로로 바꿔주셨습니다.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왜 바꾸셨나요?

베드로의 신앙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16~18절입니다.

사울이 바울로 이름을 바뀌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이름을 바꿔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아브람이 99세 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오랜만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번은 하나님이 6번째로 아브람에게 나타난 사건입니다.

갈대아우르, 12:1~3(하란), 12:7(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13:14(롯과 헤어진 후), 15:1(롯을 구한 후), 15:7(피의 언약을 맺음)에 나타나셨습니다.

12장부터 15장까지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2~3년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17:1절에 나타나신 것은 15장 피의 언약을 맺은 후 23~4년만입니다.

하나님은 오랜 시간 아브람에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동안 아브람도 일상을 만족하면서 살았습니다.

상당한 시간을 유유자적하며, 안정적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후손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이뤄진 것처럼 여겼습니다.

이스마엘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의 재롱에 행복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어쩌면 기대와 희망이 없이 지낸 세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약속의 자녀가 아님을 알았을 겁니다.

16:12절에서 이스마엘은 들나귀처럼 광야에서 형제들과 대항하면서 살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심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자꾸 나이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후 13년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지만 이젠 자식을 낳을 소망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

자기들의 생각으로 얻은 이스마엘에게 소망을 걸고 지내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부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이 18절입니다.

저는 이스마엘로 만족합니다.

하나님이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니까 마음속으로 웃으면서 이스마엘이나 건강하게 자라게 지켜달라고 합니다.

지금으로 충분합니다.

아브람은 어쩌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진 것으로 여기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동안 아브람은 23~4년 동안 방패 되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우리들도 아브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명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싶은데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를 지켜주시는 방패 되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처럼 대답할 겁니다.

 

그러나 일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일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아직 아브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절에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밝힌 이유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엘샤다이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표현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시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가지인데 아브람에게 필요한 이름은 전능한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일에 좌절하거나 중단하시는 일이 없이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행한다=내 앞에 걸어 다녀라=동행하라는 말=에녹과 같이 살아라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라는 것입니다.

완전하라=흠이없다=노아에게 사용한 단어입니다.

노아가 행했던 것을 아브람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흠잡을 것 없는 삶을 살아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내가 일을 할 테니, 내가 한 약속을 받은 사람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기에 구원을 받은 자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에 아브람의 이름을 바꿔주십니다.

이름을 바꾼 것과 전능하신 하나님과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전능하진 하나님이 아니어도 누구나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닌가요?

왜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면서 이름을 바꾸었까요?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바꾸었을까요?

아브람은 아브람이 고귀한 아버지 란 뜻이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란 뜻입니다.

사래는 나의 공주이고,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입니다.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라고, 열국의 어머니가 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이름을 바꿔주시겠다는 표현입니다.

 

이름을 바꿔주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명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고, 내가 한 약속을 믿는다면 믿는 증거를 보이라고 합니다.

할례는 사실 믿음의 표시이며 언약을 믿는 증거입니다.

왜 할례인가요?

남자에게 있어서 할례는 자기의 비밀이며,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부분을 칼로 잘라내는 것입니다.

이제 인간의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겠다는 표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음에 할례를 하라고 했습니다.

왜 마음에 할례일까요?

마음에 가장 깊숙한 부분, 하나님이 들어오면 안되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마음은 자기가 주인이 된 부분입니다.

그 부분까지 주님이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마음의 변화=가치관의 변화=세계관의 변화입니다.

 

1절의 말씀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의미가 깊습니다.

이름을 바꿔주신 것과 할례는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젠 바뀐 이름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결단을 내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젠 내 말만, 내 약속만 믿고 은혜로 주어질 일을 경험하라고 하십니다.

가짜 이스마엘이 아닌 진짜 이삭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내밀 반복되는 일상입니까?

여러분들의 이름을 바꾸시는 하나님은 마음의 할례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길 원하시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는데, 잊고 지낸 사명은 없습니까?

다시 시작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사명을 잊지 말라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저와 여러분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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