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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그레데를 맡은 디도

by ysong 2023. 11. 20.

디도서 1:1~6

한국교회도 120년이 넘으면서 교회마다 목회자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오래된 교회는 여러분의 목회자를 걸치면서 섬기고 있습니다.

바울을 이어 목회를 이어가는 분들이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디모데서가 그렇고 디도서가 그렇습니다.

전임 목회자는 바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과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낸 사도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믿음, 경건함, 진리, 지식, 영생의 소망을 전합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긴 것입니다.

디도가 이 사명을 이어가길 원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교회들로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디도를 고향인 그레데를 맡겼습니다.

디도는 고린도전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추진력, 결단력이 강한 편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남다르게 뛰어납니다.

디도를 그레데에 맡긴 이유가 있습니다.

그 섬사람들은 거칠고 악합니다.

디모데처럼 어리거나 눈물이 많으면 맡긴 힘든 곳입니다.

 

바울은 디도가 일꾼들을 바르게 세울 것을 권면했습니다.

함께 사역하는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신실한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로=감독=목회자입니다.

첫 번째 자격은 6절입니다.

가정을 잘 돌보는 자이어야 합니다.

가족으로부터 책망 받지 말아야 합니다.

삶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덕목입니다.

두 번째 자격은 7절입니다.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나이를 먹거나 높은 지위로 오를수록 고집이 세집니다.

자신만이 옳다는 생각이 강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려면 유순해야 합니다.

듣는 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분내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화가 차 있으면 분을 냅니다.

말씀으로 채우셔야 합니다.

디도서 1:8~11

교회 일꾼의 자격은 구체적입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실제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교회들이 일꾼을 잘못 세워 힘든 시기를 보낸 것을 봅니다.

극단적으로 교회가 갈라지고, 분열되는 것을 봅니다.

그만큼 교회의 일꾼을 잘 세워야 한다는 반증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가정, 인격, 관계에 있어서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됩니다.

첫 번째 조건은 어제 말씀을 나눈 것처럼 가정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가정을 사랑과 신실함으로 잘 돌보지 못하면 가족공동체인 교회는 말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조건은 인격입니다.

고집, 아집, 쾌락, 욕심과 거리를 둔 인격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자격 조건은 8절입니다.

먼저 나그네를 잘 대접해야 합니다.

나그네는 가난한 자이고, 어려움에 처한 자에 대한 표현입니다.

성경에 과부, 나그네를 잘 돌보라고 했습니다.

 

선행을 좋아해야 합니다.

선행에는 손해가 동반됩니다.

시간, , 마음까지 손해를 봐야 합니다.

받는 것에 익숙하면 선행을 베풀기가 어렵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은혜라는 사실, 청지기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선행은 가능합니다.

 

마지막 조건은 지행일치입니다.

지도자는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는 일꾼이 있는가 하면 알고만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일꾼은 가르친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책망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서 문제을 일으킬까요?

10절에 등장하는 분입니다.

할례파인데, 유대인이면서 예수를 믿었거나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종교생활에 익숙합니다.

종교의 절차나 형식에 익숙합니다.

또한 법과 원리를 안다고 자부합니다.

그래서 말이 많습니다.

스스로 의로운 척합니다.

이들이 문제이기에 경계하라고 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하셨습니다.

참 일꾼으로 거듭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디도서 1:12~16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가정사, 교회사, 사회사가 같다는 것입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기에 그렇게 살라야 합니다.

 

바울은 6세기 에피메데스가 인용한 말입니다.

고린도는 음란의 대명사라면 그레데는 거짓말의 대명사로 알려졌습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술도 많이 마시고, 먹는 것만 즐기고, 게으름뱅이로 가득합니다.

쉽지 않은 목회 상황입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맡겼는데,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디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품이 어떤지를 알려줌으로 그들이 무엇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야 그러니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13-엄히 꾸짖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빛 가운데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감추어진 밝히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위해서입니다.

 

또한 14-허탄한 이야기에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뀌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15~16절입니다.

하나님을 시인하나, 입으로만 경건한 자, 입만 열면 하나님을 이야기하지만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고, 선한 일에 나서지 않게 됩니다.

 

불만이 많으면 기도해야 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 아뢰야 합니다.

 

교회가 희망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다 감독, 장로처럼 살아야 합니다.

 

 

 

 

 

 

 

디도서 2:1~8

일주일 동안 새벽예배를 쉬니 몸과 마음이 헝클어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새벽에 기도로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으로 시작하면 그 말씀이 나를 하루 종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가정을 세우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최초의 교회라고 할 수 있는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맺으면 살았습니다.

타락하면서 첫 번째 나타난 현상은 서로를 탓하는 죄를 범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관계가 깨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교회든, 가정이든 건전하게 새우기 위한 조건들이 있습니다.

각각의 역할에 따라 취해야 할 행동들도 조금씩 다릅니다.

먼저 목회자는 바른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정직하게 전해야 합니다.

말씀이 바르게 전해질 때 사람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6~7절에 다시 언급합니다.

선한 일을 함으로써 모든 일에 모범을 보이고 가르칠 때 순수함과 진지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로 하시오.

그러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고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가장의 역할과 책임입니다.

2절입니다.

6가지 항목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첫 번째가 절제입니다.

노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절제하면 할수록 존경받게 됩니다.

그래야 경건하며=존경박데 됩니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게 됩니다.

신중하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심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여자 어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3절입니다.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남을 헐뜯거나 술을 좋아하지 말고 선한 것을 가르치라고 합니다.

젊은 여자와 남자의 역할과 책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젊은 여자는 남편과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요즘 사회는 사랑와 욕망이 섞여 있다는 것을 봅니다.

자녀의 사랑이 과도한 욕심으로 나타는 모습을 봅니다.

절제하며 순결하고 부지런히 집안 일을 하며 친절하고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교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비난받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에게도 절제하라고 권면하시오.

디도서 2:9~14

가끔 태릉을 가다가 제복을 육사 생도를 보게 됩니다.

제복을 입은 육사 생도의 행동에 시선이 갑니다.

그들의 절도와 걸음에 긍지와 자부심이 깃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영광입니다.

다른 방법, 다른 가치로 사는 것이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절제하면 다르게 사는 이유가 있습니다.

5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하고 행도이 뒤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행일치, 지행일치를 하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말씀이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8절입니다.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단점을 찾아내려고 하는 대적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후해 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잘못 보고 잘못 판단했다고 스스로 인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0절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울과 같은 반사체입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이 빛나게 해야 합니다.

당신을 보면 예수님이 보입니다.

가장 큰 칭찬입니다.

 

14절입니다.

우리를 깨끗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선물, 은혜를 주셨습니다.

주님이 은혜가 우리를 양육합니다.

어떻게요?

12~13절입니다.

경건하지 않는 것과 세상 정욕을 버리게 합니다.

신중하고 의로 경건함으로 세상에서 살도록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소망이 갖고 살게 합니다.

기독교인이 세상에서 다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디도서 3:1~7

바울이 디도에게 간곡히 부탁한 것이 있습니다.

교인들에 절제하고 경건하게 살도록 잘 가르치라고 부탁했습니다.

혹여나 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잔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1~2절의 내용이 앞서 말한 내용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잔소리처럼 반복한 이유는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몸이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그러데 교인들도 세상 사람들처럼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을까요?

3절입니다.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순종하지 않고 속이는 자였습니다.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려 살아간 자였습니다.

행락에 종노릇 하는 자였습니다.

악독과 투기를 일삼는 자였습니다.

가증스럽게 피차 미워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데 교회 교인들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습관을 바꾸고 방향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도 시골 친구를 만나며 그때로 돌아가서 말투도 바뀌는 것을 봅니다.

바울이 걱정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혹여나 옛사람의 습관이 다시 나타날 것을 염려했습니다.

 

경건과 절제의 삶에 대해 강조하고 강조하고 강조한 까닭입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에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5절 말씀처럼 성령으로 매일 매일 새롭게 해야 합니다.

6절의 말씀처럼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셔야 합니다.

 

성령이 풍성히 부어주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를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입니다.

그래야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 은혜가 이 참에 가득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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