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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바울의 마지막 편지

by ysong 2023. 11. 20.

디모데후서 1:1~7

바울은 네로황제 박해 때 순교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 서신중에서 맨 나중에 쓴 편지입니다.

 

디모데전서와 상당히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풀려나와 4차 선교여행을 합니다.

바울의 서신서들을 종합하여 살펴보면 보이는 내용입니다.

고린도, 에베소, 마게도냐를 순회하는 선교를 합니다.

각각 디모데와 디도에게 에베소와 그러네 섬을 각각 맡기게 됩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 머물면서 디모데와 디도에게 교회를 세우는 데 필요한 서신서를 보냅니다. 그것이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입니다.

그래서 목회서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게도냐에서 다시 체포되어 2차 로마감옥에 투옥됩니다.

이번에는 지하 감옥에 투옥됩니다.

그곳은 습하고, 어둠고, 두려움으로 가득한 지하 감옥이었습니다.

바울도 마지막 순교의 시간이 다가옴을 알게 됩니다.

이 땅을 떠나면서 후계를 맡아야 할 디모데에 대한 염려와 격려, 사랑을 담았습니다.

 

사람이 마지막이 되면 보고 싶은 사람이 생깁니다.

어떤 분은 자식들 다 모아 놓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기도 합니다.

바울도 마지막이 되면서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일 보고 싶은 사람은 자식처럼 사랑했던 제자 디모데이었습니다.

 

3~4절은 바울이 얼마나 디모데를 보고 싶은지에 알게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기도했습니다.

디모데를 위한 기도도 빼놓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 하면 청결한 양심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디모데가 엄마와 할머니의 신앙을 이어받았습니다.

디모데는 청결한 신앙생활을 유지해 왔습니다.

 

디모데는 눈물이 많았습니다.

기도하면서 흘린 디모데의 눈물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너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디모데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이런 믿음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시길 바랍니다.

안수했을 때의 생각도 났습니다.

6절입니다.

안수 받았을 때 받은 사명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능력, 사랑과 절제로 사명을 감당하라고 당부합니다.

디모데후서 1:8~14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능력, 사랑, 절제입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하는 것일까요?

8절에 그러므로~내용입니다.

부끄러워하지 말고,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8, 12절에 부끄러워하지 말라 당부합니다.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복음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리는 것이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비참하게 십자가에 죽은 예수님을 주로 믿는 신앙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가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간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데, 하나님이 지켜준다고 하는데 두 번이나 감옥에 갈 수 있느냐?

가짜 아니냐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 말에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은 인간의 감정이며, 기분입니다.

창피할 때 찾아오는 개인적인 해석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감정을 감정해야 합니다.

참인지 거짓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너도 고난을 받는 것을 실패로, 부끄러운 일이 보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복음은 위대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 복음에 대한 설명이 9~10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 복음을 위해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위대한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복음을 위해 선포자로, 사도로, 교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13~14의 말씀처럼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고난이 따르더라도 복음을 지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15~2:6

아름다운 것을 지키는 것은 복됩니다.

하나님과 약속, 사람과의 약속,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복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아름다운 것을 버린 사람도 있고, 찾아온 사람도 있습니다.

버린 사람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15절에 부겔로와 헤모게네입니다.

바울과 함께 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바울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 제자들이 떠난 것과 비슷합니다.

 

반면 오네시보로는 달랐습니다.

바울을 자주 찾아와서 격려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적대적인 상황에서 이런 만남을 반복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갇힌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있어주는 사람은 평생 기억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18절의 기도가 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다른 제자들에 비해 나이도 어리고, 착한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를 세워가는데 필요한 모든 성경 지식과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1~2절은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기독교 신앙의 수용과 전달이 적혀 있습니다.

 

신앙은 듣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가 진리와 신앙의 은혜를 들은 것은 바울에게서였습니다.

또 함께 들은 동료들의 증인들에 의해 더 견고해졌습니다.

 

다음은 그것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전달할 사명을 맡길 것인가?

2절입니다.

충성된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6-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보세요.

주님이 채워주시는 것을 분명히 경험하실 겁니다.

그 은혜가 차고 넘치길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2:7~13

바울은 디모데가 좋은 군사가 되길 소망했습니다.

디모데는 충성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맡은 자는 충성된 자이어야 합니다.

 

말씀을 맡은 자의 태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생각해야 합니다.

7절에서 가르침을 받은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한 번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꾸 반복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범사에 충명을 주십니다.

분별력을 주시고, 힘과 권능을 주십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8절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매이지 않습니다.

 

참아야 합니다.

10, 12절입니다.

주님과 영원한 왕노릇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부인합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이런 태도를 맡은 자의 본문을 다하길 바랐습니다.

동일하게 우리들에게 이런 군사가 되길 원하고 계십니다.

 

 

 

 

 

 

 

 

 

 

 

 

 

 

 

 

디모데후서 2:14~18

초대교회 안에는 진리에 대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진리가 있는 곳에는 가짜가 있기 마련입니다.

교리 시비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특히 부활에 관한 논쟁이 핵심이었습니다.

 

14절에 말 다툼은 바로 교리 논쟁을 말합니다.

논쟁을 넘어 다툼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리를 다툼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익이 없고 듣는 자를 망하게 합니다.

 

지금도 성경의 진리를 무너뜨리려고 시비를 거는 경우가 숱합니다.

하나님은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인데 어떤 자식이 부모를 가지고 논쟁합니까?

부모가 아닌 것 같다고 논쟁하는 자식은 없습니다.

신앙이 성숙하면 하나님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의 대상, 순종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15-어떻게 논쟁을 피할 것인가?

진리를 옳게 분별해야 합니다.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진리대로 살아가는, 부끄럽지 않은 삶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언쟁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나를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습니다.

 

16~18-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헛된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비를 하는 사람을 악성 종양으로 비유합니다.

몸 전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처럼 된다는 것입니다.

후메내오 빌레도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거짓으로 사람들을 실족케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20절에도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조금 아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신의 논리를 펴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이를 사람의 논리를 이기는 방법은 15절이 답입니다.

삶이 바탕이 되는 진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나는 살 수 있는 만큼만 예수를 전허기로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19~26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면서 누구가 고민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 앞에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하는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주님의 일꾼으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중요한 곳에 쓰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런 생각을 버린 지 오래되지 않습니다.

지금도 주님께 쓰임 받는 기도를 합니다.

 

주님께 쓰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20절에 다양한 쓰임에 대한 말씀을 합니다.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질그릇이 있습니다.

귀하게 쓰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천하게 쓰는 그릇도 있습니다.

다양한 주님의 일꾼들이 있습니다.

다 금 그릇이 되길 원합니다.

실력과 능력도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어떤 그릇이고 어디에 쓰임을 받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금 그릇이라도 깨끗하지 못하면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깨끗하면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면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일에 준비됨이 중요합니다.

어디에, 어떻게 쓰임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쓸 만한 그릇이 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디모데는 젏습니다.

그래서 정욕을 피하라고 권면합니다.

젊기 때문에 자신을 깨끗하게 가장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종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라가라고 합니다.

이것이 디모데에게 있어서 깨끗한 그릇으로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주의 일꾼은 다투지 않습니다.

온유하고, 가르치는 잘하고, 참아야 합니다.

 

저나 여러분들을 주의 일꾼으로 삼으셨습니다.

이 소명을 깅담하기 위해 내가 무슨 그릇인가를 보기 보다는 내가 깨끗한가를 보시길 바랍니다.

온유함으로 가르치고 있는지 보길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3:1~5

말세의 징조에 대한 말씀입니다.

마지막 때가 오면 사랑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요?

 

말세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말세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 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입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말세의 태입니다.

고통이 많아집니다.

견디기가 힘들어집니다.

 

말세 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19가지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에도 나온 말씀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자기를 사랑하며입니다.

자기애, 자기사랑, 자기자랑이 문제의 시작입니다.

자기 사랑과 하나님이 사랑이 양립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독점적입니다.

사랑은 가치의 중심이 옮겨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기를 부인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나머지는 자기 사랑의 증상입니다.

원통함을 풀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풀지 못하는 것입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합니다.

말세의 때는 돈, 섹스, 권력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좋은 만큼 위험성이 따릅니다.

말세의 때의 증상을 자기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무엇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명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5-경건의 모양을 갖췄는데,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태도를 말합니다.

향기, 생명력입니다.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는 사랑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6~12

가만히 들어간 자들이 문제입니다.

에베소교회에 경제적으로 윤택한 과부들이 있었습니다.

과부들은 학문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거짓 선생들을 집으로 끌여들였습니다.

이것을 노리는 이단들이 생겼습니다.

이들은 엉뚱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들은 진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불러일으켰을 뿐입니다.

 

지금도 성경공부를 하기도 했는데, 진리에는 이르지 못한 이들을 봅니다.

평생 신학공부를 했다고 하는 신학교수조차도 진리가 없는 경우를 봅니다.

이들에게는 삶이 따르는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얀네와 얌브레와 같은 이들입니다.

히브전승에 따르면 모세가 기적을 베풀 때, 바로 왕 앞에 나와서 대적했던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부패했습니다.

마음은 지정의의 좌소인데, 마음이 부패하니 분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너무도 자주 들었던 말씀입니다.

10~11절입니다.

너무 평범하지만 그것이 진리입니다.

 

진리와 함께 하는 것은 박해입니다.

11~12절입니다.

고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진리 속에 살고자 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

고난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3~17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사는 신앙인은 의예로 적습니다.

말씀에 따라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 까닭입니다.

우리 주님이 염려하지 말라고 했지만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바울은 데모데가 말씀의 능력에 따라 교회를 섬기길 바랐습니다.

악한 사람은 더 악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은 속고 속이면서 더 악해집니다.

이런 악한 사람에게 맞서는 능력은 말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3가지 행동이 필요합니다.

먼저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영생, 생명을 배워야 합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위기 속에서 어디로 피했는 지 배워야 합니다.

두 번째는 확신해야 합니다.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의심은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상황과 환경에 따라 흔들리게 됩니다.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늘 잠겨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늘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떻게 아침의 기도와 저녁의 기도로 늘 머물러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늘 머물러 있었습니다.

묵상의 기도를 일상을 채웠습니다.

아무리 다급하고 주님께 묻고 결정했습니다.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갔습니다.

 

성경은 3가지 능력이 있습니다.

15절에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성경의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으로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모든 행할 능력을 줍니다.

 

 

 

디모데후서 4:1~5

말씀을 전하며 사는 것은 행복합니다.

2절의 말씀은 모세도, 예수님도, 바울도 부탁한 지상명령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31: 11~13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에게 듣게 할지니 12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율법을 듣게 하고, 배우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지켜 행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8: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신 지상명령입니다.

가르치고, 지키게 하라, 내가 항상 함께 하실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2절에서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합니다.

삶으로 가르칠 때 가능한 말씀입니다.

모든 생각, 가치관 행동이 동반 될 때 가능한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오래 참음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오래 참으면서 말씀으로 경책하고, 경계하며 권하는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모세는 제사장과 레위인, 여호수아에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작은 예수로 살기로 한 우리들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바른 교훈을 받지 않으면 혼란스러워집니다.

자기 욕심을 따르게 됩니다.

자기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교사들의 말을 듭습니다.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에 많이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외면합니다.

쓸데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진리가 없는 세대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2절과 5절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가진 자는 모든 일에 자제합니다.

고난을 견딥니다.

전도자로 책임을 다히기 위해서입니다.

디모데후서 4:6~8

바울은 디모데후서 곳곳에서 툭하면 고난을 말합니다.

3: 12절에 박해를 받으라, 4:5절에도 고난을 받으며, 고난에 대한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고난은 사람들이 피하고 싶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자꾸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

고난을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저도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 때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단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쉽게 편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하나님의 귀한 선물을 포장한 포장지와 같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고난이라는 단어를 쉽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난의 끝자락에 선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젠 제물을 들릴 때 부어지는 피와 같이 자신도 그렇게 주님께 드려질 것을 직감했습니다.

이 땅에서 떠나 주님께 가까이 갈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허락한 것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삶의 마감을 주님의 뜻으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저는 바울의 고백의 백미가 7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멋진 고백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주님을 위한 싸움이 선한 싸움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칩니다.

자신의 인생을 주님께 맡긴 분들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한점의 후회가 없는 고백입니다.

 

믿음을 지켰습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고백입니다.

신롸 관계가 깨지지 않았다는 고백입니다.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미 바울은 이 땅에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떤 죽음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를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4:9~18

마지막 가까워지면 외로운 것 같습니다.

바울도 상당히 외로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합니다.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 하는 사람과 떠난 사람들이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이 있어서 떠나기도 하고 마음이 변하여 떠나기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음이 변하여 떠난 사람은 데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이 있어서 떠난 사람은 그레스게와 디도로 보입니다.

지금 누가만 곁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이 또 있습니다.

마가입니다.

1차 선교여행 중에 떠난 마가입니다.

2차 선교여행을 준비하면서 바나바와 다투게 된 원인이 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헤어진 이후 1번 정도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마가는 자신의 자리에서 사역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속상하게 했던 마가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젠 마지막 때가 스스로도 가까이 왔다고 직감하고 있는데 가보의 집에 가서 책을 가리고 오라고 합니다.

끝까지 공부하는 자세는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많이 추었나 봅니다.

두꺼운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구리 세공업자인 알렉산더가 바울에 많은 해를 끼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한 까닭입니다.

디모데에게 그 사람을 조심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16절에 대부분 네로의 박해로 인해 바울 곁을 떠나 숨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바울과 함께 주님이 계십니다.

17~18절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힘을 주시고 지켜주시는 분인 주님밖에 없습니다.

변함없고 신실하신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닮아 신실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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