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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낮아지니 비로소 보입니다

by ysong 2023. 5. 26.

에베소서 1:1~6

바울은 서신서를 통해 편지를 받는 이들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몇 개 적어봤습니다.

맘에 드는 인사말을 골라 보세요.

에베소는 예수 안에서 신실한 자

골로새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

빌립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

데살로니가전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고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인사말에 깊은 신앙의 고백이 담겨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에베소서는 61~63년 경 로마에 가택연금 되었을 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60세가 넘어서 쓴 편지로 바울 저서의 백미로 일컫습니다.

처음에는 주님이 곧 재림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를 쓴 당시에는 주님의 재림이 늦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쓰게 됩니다.

인격과 신앙이 성숙한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칼빈이 에베소에 매료되어 40회에 걸쳐 주일설교를 할 정도였습니다.

정교한 교리를 함축해 놓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교회의 본질, 정체성에 관한 본래 의도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이 주시길 원하는 교회, 주님이 주시길 원하는 교회가 이런 것이구나.

새로운 공동체를 발견하게 되고, 교회를 이루는 나라는 존재를 깨닫게 됩니다.

3-신령한 복이란?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복입니다.

그 복은 4~6절입니다.

4-선택입니다. 택한 받은 성도입니다.

신비의 창을 열어 주어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려준 계시입니다.

요한복음 15;16절 주님이 선택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 선택과 결정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네가 결단한 것 같은데, 뒤에서 성령 하나님이 그렇게 하도록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언제요-창세전부터, 영원에서부터 너는 택함을 받은 것이다.

영원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영원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를 말씀합니다.

5-예정입니다. 기쁘신 뜻대로 예정했습니다. 예정은 과거에 대한 은혜의 고백입니다.

내가 선택을 받고 살아가게 되면서 나를 예정하셨구나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6-그의 은혜와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 나답게 되는 것//나답게 사는 것(컵의 용도,,각각의 용도가 있음)

인간은 의식적으로 영광을 드러내려고 해야 함, 피조물은 자체가 영광을 드러내는 것

알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목적대로 사는 것

에베소서 1:7~14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비밀을 아는 것이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위기와 힘든 일을 극복할 수 있는 힘입니다.

 

7절은 한 개인의 구원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8절에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셨습니다.

비밀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구원에 비밀에 담긴 뜻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구원을 믿게 된 배경이 있다는 것입니다.

깨닫게 알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나 기뻐하신 일입니다.

9절 하반절에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 따라, 때가 찬 경륜에 따른 것입니다.

한 사람의 구원 사건 뒤에 엄청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예정하신 것입니다.

때가 찬 경륜에 따라, 마치 농부가 과실을 심었는데, 때가 차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최적 환경이 되었을 때, 마침내 그 일이 이뤄지게 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 믿어서 구원 받은 사건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의 구원이 절대로 적은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창세 전에 예언된 우주적인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한 개인을 구원하여 이루고자 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꿈꾸면서 불렀을까?

10절입니다.

피조세계는 갈등, 전투, 강한자 지배합니다.

약한 자는 생존을 살아갑니다.

하늘은 평화, 평강이 가득합니다.

하늘의 것이 땅에 이뤄져서 통일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어, 평화와 화평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이 일을 이루기 위해 구원하신 것입니다.

 

개인으로 시작되지만 교회로, 사회로, 우주 전체로 확장되어 하늘과 땅이 통일됩니다.

나를 향한 큰 그림을 놓치지 마세요.

교회가 되게 하셨고, 영광과 찬송이 되는 인생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15~19

배경의 스토리가 없습니다.

갈리디아서, 고전, 빌립보등은 배경이 있습니다.

서신서 자체를 붙들고 씨름해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운명의 사람도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했구나

나를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렇게 살게 되었구나

교회를 재 발견하게 됩니다.

 

신앙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신앙의 재발견을 위해서는 3가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의 눈이 밝아지도록 기도했습니다.

17-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 주어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에베소교회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아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더욱더 잘 하나님을 알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18-성도의 부르심의 소망을 알기를 원합니다.

창세전부터 왜 예정하고, 부르신지를 알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주는 유산=기업을 알길 원합니다.

 

19-하나님의 위력이 역사할 수 있는지,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아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인 하나님의 위력과 능력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능력과 위용을 경험하고 활용하면서 살아갑니까?

얼마나 풍성한 은혜를 깨달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30년 동안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해온 거지가 어느날과 마찬가지로 "한 푼 줍쇼."라는 말을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한 행인이 거지에게 말했습니다.

"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 적선도 할 수가 없구려. 그런데 당신이 걸터앉아 있는 그건 뭐요?"

"이거 말이오? 그냥 낡은 상자일 뿐입죠. 난 늘상 이 위에 앉아 있었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쭉 난 이 상자 위에 앉아 있었소만......

"행인은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한번이라도 그 안을 들여다본 적이 있소?“

"그건 봐서 뭘 하게요?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안을 한번 들여다보시구려."행인이 다그쳤습니다.

거지는 마지못해 상자 뚜껑을 들어올렸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상자 안에는 놀랍게도 황금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혹시 우리가 구걸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의 위용과 능력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요?

에베소서 1:20~23

어제 바울의 기도내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 주셔서 하나님을 밝히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이 베푸신 기업의 풍성함을 알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알게 해 다랄고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렇게 알게 되어 무엇을 하고자 했을까요?

 

교회는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22-예수님의 이름이 모든 통치, 권세, 능력, 주권, 현재와 미래에 가장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주관자이며 통치자이십니다.

그가 왕이고 그가 진정한 통치자입니다.

 

또 하나는 22~23절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만물 위에 두셨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의해 그분의 발 아래에 놓으셨기에 예수님은 만물 위에 머리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주만물의 통치자로 두셨습니다.

여기서 만물이라는 곳을 차지하고 있는 선하고 악한, 천사적이고, 마귀적인 모든 지적 존재를 포함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3절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교회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1)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우리는 몸입니다.

하나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머리의 통치를 받는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머리 됨을 인정한다면 몸끼리 다투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교회가 제일 힘들게 한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지켜보면서 조직교회를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 교회 공동체에 소속되기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치를 모르는 까닭입니다.

2) 교회는 그리스도로 충만한 곳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넘쳐야 합니다.

신령한 복은 교회를 통해서 나에게 주십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충만케 하는 곳입니다. 성령인 전인 내가, 그들이 모인 공동체가 그리스도로 충만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1~10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완전히 죽었습니다.

죽었을 때 어떻게 살았는가요?

2절입니다.

세상의 유행을 따랐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의 매여 두려움과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사탄은 불순종하는 이들에게만 역사합니다.

그들에게만 영향력을 미칩니다.

 

죽었을 때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요?

3절입니다.

썩어질 육신의 것을 심었습니다.

욕심에 따라 살았습니다.

육체와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을 위해 살았습니다.

소유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취하기 위해 살았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이 쌓는 인생을 살았던 것처럼 그것이 인생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 끝은 진노밖에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끝은 죽음의 진노밖에 기다리지 않는 삶을 위해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납니다.

4절입니다.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이 우리는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은 큰 사랑입니다.

이 땅에 볼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으로 완전히 죽었던 우리는 살리셨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집니까? 이 사실에 감격합니까?

 

그 사랑은 단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는 세대에게 계속해서 베푸십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8~10절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나의 공로나 의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런 구원을 누리기에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10)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새롭게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본문은 구원론과 성화론을 아주 간결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11~15

어제는 죄인 한 개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교회를 이루게 되었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한 개인은 선한 일을 하도록 세우셨다는 말씀입니다.

구원과 성화에 대한 일반적인 적용입니다.

 

본문은 에베소 교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가를 좁혀서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은 에베소교인을 가리킵니다.

11~12절은 유대인으로 시각으로 본 이방인에 대한 묘사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로 취급되었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배제된 사람이다.

약속에는 외국인이다.

언약을 안다고 해도 너희를 위해 준 것이 아니라 효력이 없다.

소망이 없다.

하나님도 몰랐다.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13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가깝게 되었다.

하나님이 살려주셨다.

사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나타나는 모습은 하나님 앞에서는 겸손, 다른 사람이 볼 때 온유하게 보입니다.

 

이젠 육체의 욕심을 심지 않습니다.

고상한 가치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을 잡기 위해 예수 알기 전에 잡았던 것을 내려놓게 됩니다.

억지로 할 수 없고, 가치 있는다는 것을 발견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벽이 무너집니다.

문화, 이념, 피부색으로 갈라졌던 벽을 허물었습니다.

차별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잘 믿으면 담이 허물어지고 화평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증거입니다.

15- 예수님인 한 새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과 화평을 누리는 것입니다.

화평은 구원받은 이에게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에베소서 2:17~22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 평안입니다.

 

19-시민, 하나님의 권속,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외인이었던 사람이 이젠 시민이 된 것입니다.

영혼의 난민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것입니다.

 

그 나라의 복지에 따라 살피고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그 분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세워져 가는가?

20-창세전부터 예정된 자녀입니다.

나는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짐을 받은 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위에 테를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이는 뜻입니다.

예수님 위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건물이나 제도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 믿는 공동체입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1-당시는 에베소교회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로마교회, 예루살렘교회 각각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각각 사는 곳도 다릅니다.

그러나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하는 것입니다.

함께 가는 것입니다.

22-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의 기초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터 위에 세우진 우리는 어떻게 자라갑니까?

서로 연결되어 함께 자라갑니다.

교회는 공동체로 존재합니다.

낮은 부분을 메꾸면서 함께 자라가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에베소서 3:1~7

바울이 로마에 가택연금으로 갇혀 있습니다.

예수의 일로 갇혀 있습니다.

예수의 일로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나 욕심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갇힌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라 아니라 세상 밖에 있는 사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2-하나님이 세계를 경영하는 손길을 너희가 들었을 것이다.

세계를 다스리는데 권력이나 돈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경륜을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질서를 은혜로 경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비밀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1장입니다. 9~10절 긍극적으로 하나가 되는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열어서 보여 줄 때 알게 됩니다.

알게 해야 믿게 됩니다.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5- 성령이 오셔야만 알게 됩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서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그 분의 사랑과 자비를 알게 됩니다.

오직 복음,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이며 됩니다.

 

그 비밀은 6절입니다.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함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5:1-하나님의 본받는 자가 되고

6:10-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고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선물을 따라 일꾼이 되었습니다.

일꾼은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섬김이 몸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3:8~13

신앙인이 되면 겸손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상당히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의 시민권도 있고 공부하기 위해 고향 다소에서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왔습니다.

당시 최고의 학파인 갈말리엘학파에서 수학했습니다.

출세의 길이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자신에 대한 소개가 달라집니다.

고린도전서 15:9사도 중에 작은 사도

요즘 말로 하면 목사 중에 작은 자라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전서를 쓰고 5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이젠 목사나 사역자가 아닌 교회의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을 때,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곧 주님을 뵙게 될 것이라고 직감하게 될 때, 자신을 디모데전서 1:15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합니다.

주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데, 죄인 중에 괴수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겸손이 잘 안되는 이유는 아직도 내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깊게 만나면 만날수록 자연스럽게 나오는 열매일 뿐입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고 있는 분들에게 나오는 열매일 뿐입니다.

 

바울이 점점 겸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진리 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9절 창세전에 감추어진 비밀의 경륜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정하신 비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겂어진 주어진 예정하심의 깊은 진리를 깨닫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10-교회로 말미암에 그 일을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섭리를, 풍성하신 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초월적 지혜를 세상에 알게 하는 것입니다.

12-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타는 현상은 13절입니다.

13-열정을 깨달은 사람은 환난과 같은 것들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매여 있는 것으로 낙심하지 않습니다.

매여 있는 것이 도리어 영광입니다.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3:14~21

바울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바울은 기도하면서 사역했고, 기도하면서 전도했습니다.

교회들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서신서 곳곳에서 바울이 무슨 내용으로 기도했는지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이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15절입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그 분께 항복했다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겸비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도 머리를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간절함이 묻어 납니다.

우리 주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땀이 피방울이 될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낙타 무릎이 되었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자세에서 그들의 신앙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기도의 내용은 어떨까요?

16-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기를

18-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충만하길 원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놓인 문제가 아닌 근본적이고, 기초가 되는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분인가요?

20절에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을 넘치도록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했는데, 넘치도록 주신 것처럼 그렇게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넘치도록 주시질 않을까요?

아직 그것을 받을 만한 실력과 능력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받으면 교만해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신 것이 나에게 최선입니다.

 

주시는 분도 주님이고 취하시는 분도 주님입니다.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기도자가 되길 바랍니다.

 

에베소서 4:1~6

1~3-교회란 무엇인가?

창세전에 예정하신 사람들을 택하여 이루신 공동체입니다.

예수 안에서 주신 공동체입니다.

선자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지어가는 공동체입니다.

함께 상속자가 되어 약속에 참여한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얼마나 위대한 공동체인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4~6- 교회를 이루는 성도의 삶은 어떤가?
어제 말씀을 전하면서 하나님은 간구와 생각하는 모든 것을 넘치도록 역사하시는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넘치도록 주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물질적인 보상이나, 세상적인 가치로 생각하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나는 넘치도록 받지 못하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제 말씀을 전하고 1절의 주 안에서 갇힌 내가라는 말씀을 보면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로마 감옥에, 비록 감택연금의 상태이지만 죄수의 신분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넘치도록 주시는 풍성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주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누리는 풍성하십입니다.

그 평강, 그 만족, 그 은혜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의 삶에서 출발은 1절에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함당하게 행하라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너희는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2~3절에서 덕목에 대해 말을 하는데, 이것을 지키려고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2~3절처럼 살 힘과 능력이 주어지지 않으면 율법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이 다시 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내적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부르심에서 나옵니다.

 

나를 이렇게 살도록 부르신 주님을 보셔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온유하게, 용납하면서 하나게 되게 하실 것을 힘쓰도록 능력과 힘을 주십니다.

나는 그렇게 살도록 부르셨다는 확신 가운데 서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7~

그리스도의 선물, 은사를 주셨는데, 분량대로 주셨습니다.

은사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맞게 맡기 셨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시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은사를 주신 목적이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은사는 성도를 온존하게 합니다.

은사는 섬기는 것입니다.

은사는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나아갈 방향이 있습니다.

13절에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지행일치입니다.

가장 닮고 싶은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이가 그리스도를 닮는 장성한 분량입니다.

 

장성한 사람이 분별하게 됩니다.

14절입니다.

- 사람에게 속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전에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대화 중에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 간사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정직한 영인 성령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교훈의 마음이 빼앗기지 않습니다.

각종 철학, 문학, 경제의 이론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성경을 통해 철학, 경제, 문화, 사회에 관한 정확한 가치관, 세계관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장성한 사람은 이런 것을 합니다.

15~16절입니다.

- 참됩니다.

- 늘 성장합니다.

-부족을 채워줍니다.

 

출발은 은사입니다.

 

 

 

 

에베소서 4:17~24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 총명이 어두워집니다.

솔로몬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는 온갖 지식과 총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허무한데 마음을 빼앗기고는 총명이 어두워졌습니다.

진짜와 가짜를 판단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백성을 구하지 못하고 타락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마음이 굳어집니다.

늙은이가 되면 마음이 굳어집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기적인인 마음을 갖게 됩니다.

어른이 되면 마음이 부드러워 모든 사람을 포용합니다.

들어주는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이해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감각을 상실합니다.

영적인 감각을 상실합니다.

자신을 방탕에, 욕심을 부리면서 살도록 내맡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깨진 인생에서 나오는 생활패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유혹에 따라 썩어지는 구습을 버립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립니다.

 

새 마음을 갖고 새로운 옷을 입습니다.

타락으로 기능이 상실된 의, 진리, 거룩을 회복합니다.

의는 왕에게, 진리는 선지자에게, 거룩은 제사장에게 주신 능력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 진리, 거룩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5~32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구원받은 사람을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유혹의 욕심에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25-그런즉~이후는 새 사람의 삶의 패턴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침이 또다시 율법이 된다면 다시 무거운 짐이 됩니다.

율법은 무겁지만 주님의 멍에는 가볍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주님과 함께 멘 멍에이기 때문입니다.

 

25-거짓을 버려야 합니다.

진실의 말을 해야 합니다.

 

26-분을 내지 마라

혹시 분을 내더라도 오래 끌지 마라

분을 품고, 분을 묵상하고, 분을 끌어안고 살지 말라

그 순간이 바로 마귀에게 틈을 주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주인 행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게 마귀의 종이 됩니다.

 

28-흠치지 마라

물질뿐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흠치면 안됩니다.

가스라이터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영혼을 흠치는 것입니다.

 

29-언어를 잘 사용하라.

더러운 말은 음담패설을 뜻합니다.

신앙이나 불신앙이나 음담패설을 줄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도 옛날엔 음담패설을 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듣고 줄였습니다.

간혹 불쑥불쑥나올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나를 이끌도록 맡기고 있습니다.

 

30-성령을 근심하지 말라

성령이 근심하는 것은 31절입니다.

이런 행동은, 삶은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다.

 

성령이 근심하지 않는 일도 있습니다.

32절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기에 주님의 멍에는 가볍습니다.

 

 

 

에베소서 5:1~14

우리는 누구입니까?

1~2절에 사랑을 받는 자녀=계속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자,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을 드리기까지 사랑한 자입니다.

 

사랑을 받은 자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있지 않은데, 사랑하려고 하면 힘들고 지칩니다.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없습니다.

만족함이 없어서 금방 고갈됩니다.

먼저 사랑을 받고 살아야 합니다.

 

사랑을 받는 자는 옛사람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3~6절입니다.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을 이름조차 부르지 않게 됩니다.

추잡한 짓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유치한 농담을 버리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생활하게 됩니다.

 

누가 하나님의 기업을 받지 못하나요?

음란한 사람, 더러운 사람, 욕심 많은 사람, 우상 숭배자입니다.

 

사랑 받는 사람, 새사람은 빛 가운데 살아갑니다.

8절에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빛의 자녀는 열매 없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바울은 옛사람과 새사람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9절처럼 빛의 생활은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빛에 의해 밝혀질 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에베소서 5:15~21

빛의 열매는 착함, 의로움, 진실함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둠에 있지 않습니다.

어둠에 있으면 빨리 빛 가운데 나와야 합니다.

 

지금의 나의 행동이 빛의 열매인가 어둠의 열매인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자신의 분노, 욕심에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이 빠를수록 무엇을 할 수 있는가요?

 

16절의 말씀처럼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주어진 동일한 24시간이지만 빛의 열매를 맺는 시간이 많다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자는 17절의 말씀처럼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됩니다.

 

세월을 낭비하는 대표적인 표현은 술 취하는 것입니다.

분별하지 못하고 어둠에 지배를 당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은 19~21절입니다.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로 서로 이야기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고 찬송하는 예배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많이 드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은 수보다 많은 수가 드리는 것이 좋죠. 제가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주님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니가 드리는 진정한 예배면 충분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예배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언제나 모든 일에,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감사는 인생을 해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가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이 감사입니다. 감사하면 생활이 윤택해집니다. 감사는 또 감사를 낳습니다.

하나님의 경외하고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2~33

부부가 가정의 출발이고, 기초단위가 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에베소에 담긴 순서를 의미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부관계를 설명하고 있고, 6장으로 넘어가서 부모공경, 자녀교육, 밑의 사람이라고 상징되는 종들에 대해, 윗사람이라고 상징되는 상전에 대한 태도를 열거하고 있는 순서 때문입니다.

건전한 인간관계의 출발은 부부에게 달려 있구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적원리를 깨닫지 못한 부부는 부부싸움을 많이 합니다.

부부싸움은 친구 10명과 싸운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미숙하면 부부싸움을 많이 합니다.

부부관계는 복종과 사랑의 관계이어야 합니다.

마치 주님과 교회의 관계인 것처럼, 머리와 몸처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둘이 하나로 묶인 관계입니다.

22절과 33-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존경하라는 겁니다.

복종이라는 단어 때문에 아내들이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할의 개념입니다.

머리의 역할과 몸의 역할이 각각 있습니다. 감기가 걸리면 머리에 옷을 입습니까? 몸에 옷을 입히죠. 몸을 아깁니다. 머리의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중풍에 걸린 것입니다. 머리와 몸이 따로 헤어지면 죽습니다.

머리됨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특히 아이들 앞에서 머리됨을 인정하셔 합니다. 또한 남편이 예수님의 역할, 예수님의 속성의 배역을 맡았음을 인정하라는 겁니다.

 

2528-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남편은 책임자로서, 보호자로서 그 역할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책임입니다.

부부는 쌍방의 관계입니다. 가깝기 때문이라도 존경해야 합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존댓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서로의 인생을 꽃 피우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거울이 먼저 웃던가요? 내가 웃을 때 거울도 웃습니다.

상대방이 변하기 원하십니까?

내가 변해야 합니다.

저는 날마다 변해야 한다는 것을 외우고 있습니다.

귀찮고, 허기 싫은 일이 생기면 내가 먼저 변해야지 하고 움직입니다.

부부관계는 상호적 원리이고 동등이 원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쪽 행복하고 한쪽은 불행한 것은 참된 부부관계가 아닙니다.

함께 행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소망을 두고, 남편을 세워주고 순종하면 남편들이 존경받는다는 생각으로 인해 변화될 겁니다.

 

 

에베소서 6:1~3

바울이 에베소서를 쓸 때는 로마 감옥에 갇혀 있을 때입니다.

예루살렘에 체포되어 2년 동안 구금되었다가 가이사에게 상소함으로 로마 감옥에 가택연금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오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지만 밖으로는 나오는 못하는 매인 상태입니다.

로마로 가는 도중에 유라굴라는 만나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현재 혼자입니다.

부부의 문제를 쓸만한 처지가 아닙니다.

바울은 부인이 사별했거나 이혼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은 이후 너무 변한 모습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혼을 당했을 것으로 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사도들은 부인과 함께 사역을 다녔지만 바울은 혼자 다녔습니다.

그런데 부부의 원리를 쓸 수 있는 것은 말씀이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말씀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십계명을 통해, 성령의 감동으로 특별히 바울이 깨달은 원리를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1~3절은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활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1-주 안에서 순종하라

-주안에서란? 순종의 범위를 정해주고 있습니다.

1~4계명을 전제로 순종함을 말한다.

주님의 뜻에 일치할 때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부모가 하나님을 믿지 말라고 핍박을 할 때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

 

순종의 모범을 보여준 분이라고 하면 이삭입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고 할 때, 힘으로 아브라함을 제압 할 수 있었지만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순종의 실체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끝까지 순종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순종은 끝까지 부모의 말을 따르는 겁니다. 지킬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부모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겁니다.

두 번째 2-부모를 공경하라//레위기는 부모에게 공경하라고 대신 경외하라고 표현

레위기 19:3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32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경외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 사용하는 특별한 단어인데, 부모에게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 동역자로 자녀들을 창조케 하기 때문입니다. 경외는 존경하고, 권위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인생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듯이,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배우지 못하셨어도, 경제적으로 무능해 보여도, 늙고 병들어 약해지셨어도 자녀는 당연히 효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 어렵기 때문에 엄하게 경고하고 있음

에베소서 6:4

오늘 본문에는 자녀를 양육하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비들아-아버지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하나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몸시 화나게 하지 말라// 대신 말씀으로 교훈하고 훈계하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 자녀들이 억울한 감정을 가지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깊은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잘못한 것보다 많은 형벌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에 대한 폭력은 학교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보다 가정에서 가장 많이, 심하게 이뤄진다는 겁니다. 정당한 채벌 이상을 해서 마음에 화를 갖도록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자녀들에게 노엽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녀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시편 127:3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여호와의 재산입니다.

내 아들, 내 딸도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자식들이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옵소서, 담대하게 맡길 수 있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방치하라는 것이 아니라 맡긴 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내 소유처럼 맘대로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맘대로 하게 되면 자녀들을 노엽게 하게 됩니다.

- 자녀는 상급입니다.

자녀들은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상입니다. 상장입니다.

잘 키우면 자녀로 인해 상을 받습니다.

자녀에 대한 청지기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영적으로 접근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고, 주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교훈-가르치는 것, -지적

훈계-훈련시키는 것-행동

양육-말씀으로 길러라 것-의지적

으뜸이 되는 성경적인 자녀양육법은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하는 겁니다.

잠언 22: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디모데후서 3:16~17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사람들은 - 자기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 기준이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경이 기준입니다. 유일무이한 기준입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암송하고, 적용하고, 습관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여기서 성공하면 자녀교육은 성공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환경이 있습니다.

- 경건한 자녀는 경건한 부모에게서 나옵니다.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에베소서 6:5~9

오늘 말씀을 종과 상전들의 사회생활에 대한 말씀입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대부분 성도들은 종이나 여자들이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종들에 대한 말씀이 5~8절이고, 상전들에 대한 말씀은 1절 뿐입니다.

그만큼 종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종들의 사회생활이란 주인집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종이었다가 해방되었지만 자유인으로 기존의 상전의 집에서 직장처럼 일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직장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관된 태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5-그리스도께 하듯

6-그리스도의 종처럼

7절주께 하듯 하고

8-주께로부터 받은 줄을 앎이라-직업소명론이죠.

 

상전을 대하는 태도나 일을 하는 태도가 주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 모든 일을 할 때, 주께 하듯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주께 하듯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5-성실한 마음으로

6-남을 속이는 눈가림으로 하지 않는 것

7-기쁜 마음으로

8-이곳에 나를 보내셨다는 마음으로

이것이 주께 하듯 하는 태도입니다.

 

상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위협으로 대하지 말라(공갈협박)

진정한 상전은 하나님이라는 생각

나는 대리 통치자라는 생각으로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것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라고 합니다.

그때 온전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0~15

마귀의 간계는 사람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내가 만난 문제가 마귀의 간계에 의한 것인지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대부분 마귀의 간계인지 모르고 혈기와 육신의 힘으로 상대합니다.

그럴 경우 대부분 패배의 쓴맛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상대할 대적은 악한 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13절입니다.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전신갑주란 공격과 방어를 위한 완전 무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사람이 만든 갑주가 아닌 하나님이 만드신 영적 갑주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믿음의 방패, 복음의 신으로 갖춘 무장을 의미합니다.

영적 싸움에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라야 합니다. 골리앗은 블레셋의 거장이었습니다. 그는 놋 투구, 갑옷, 놋쇠 각반, 놋쇠 단창으로 무장했고 방패를 든 무사가 앞장섰습니다. 양치는 목동이었던 다윗의 무장은 물매와 돌멩이 다섯 개였습니다. 미사일에 맞서는 소총 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고 선포했습니다. 결과는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삼상 17:50)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이긴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고 했습니다. 영적 전쟁에 이기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라야 합니다.

 

14절입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서서입니다.

싸울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낙담하거나 주저 않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인드입니다.

1)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사단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거짓에 속은 것은 진리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사단에 맞서는 길은 진리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2) 의의 호심경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 신분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신분을 흔들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너를 자녀 삼았으면 이꼴이겠느냐고 자꾸 의심을 불어 넣습니다.

3)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복음 전도를 좌절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편안 안에서 일 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사단은 우리의 편안을 깨려고 합니다.

에베소서 6:16~20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어제 말씀에 따라 진리의 허리 띠, 의의 호심경, 편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실은 줄 믿습니다.

거짓을 물리칠 수 있는 참된 진리로 무장하고,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구원의 확신을 주는 호심경, 복음을 전하면서 얻어지는 편안의 신발을 신은 신 줄 믿습니다.

전신갑주는 방어와 공격의 무기를 갖추는 것입니다.

방어는 말씀이고 공격은 기도입니다.

 

4) ‘믿음의 방패입니다.(16)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권능과 보호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의미합니다.

사단의 공격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는 믿음이라는 방패를 가지고 사단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5) ‘구원의 투구입니다.(17) ‘

투구는 로마 군인들이 착용했던 청동으로 만든 머리 보호용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악한 영들과 담대히 싸워서 승리해야 합니다.

여기까지가 방어용입니다.

 

공격의 무기는 무엇일까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18)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서 마음과 생각에 채워야 합니다.

 

여기에 중요한 무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적 군사들입니다.

영적전쟁터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영적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은 오직 마귀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은 하나님께서 친히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건강하게 하십니다. 회복시키시고,

치유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선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바울처럼 고난 중에서도 승리의 선언을 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더 이상 인생의 패배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승리자로 삽니다.

 

에베소서 6:21~24

바울의 끝 인사입니다.

만남의 첫인사도 중요하고, 끝인사도 중요합니다.

 

편지로 쓰여진 에베소서는 두기고가 전달했습니다.

골로새서도 두기고가 전달했습니다.

 

사도행전 20:4절에도 등장하는 두기고는 에베소 사람입니다.

바울과 고린도에도 동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젊은 동료인 두기고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두기고를 사랑을 받는 형제이며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이라고 부릅니다.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을 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사랑을 받으시면서 살길 바랍니다.

주안에서 진실한 일꾼이어야 합니다.

진실한 일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섬김에서 나오는 별칭입니다.

 

두기고 편지를 안전하게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몇 가지 개인적인 소식까지 추가해서 말해 주었리라 믿습니다.

 

바울이 두기고를 보낸 이유를 22절이 덧붙입니다.

- 우리의 사정을 알리기 위해 특별히 보냈습니다.

- 너희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를 보냈습니다.

바울과 에베소교회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에베소교회는 19~20절의 말씀처럼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바라는 축복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바울의 첫 번째 기도이며 바램은 23절입니다.

평화와 믿음을 겸한 사랑입니다.

성령의 하나가 되심을 것을 힘쎄 지키는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변함없이 사랑하는=다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불멸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영혼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평화, 사랑, 믿음, 은혜 이 4단어는 신앙생활 내내 중심 단어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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