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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빛의 갑옷을 입자

by ysong 2022. 9. 17.

로마서 13:11~14절

가장 가까운 이웃인 형제, 자매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습니까? 우리가 이웃들과 지내면서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실천하기 위해 기억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방황하는 젊은 사람을 위대한 신자로 바꿔놓은 말씀입니다.

 

기독교 2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성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로마서 13: 13~14절은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거스틴을 회개하는 하도록 한 말씀으로 유명합니다.

 

어거스틴이 겪었던 회개를, 영적인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거스틴처럼 겉으로는 교수요,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성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웠던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체험이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1. 지금이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입니다.(11)

11절은 종말의 때가 가까이 왔으니 지금이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다는 의미입니다.

질문-바울은 2천년 전의 인물인데, 그때도 종말이라고 했지만 지금까지도 종말이 오지 않는 것 보니까 잘못된 표현이 아니냐?

종말이 곧 온다는 의미보다는 언제라도 있을 수 있다는 신념의 표현입니다.

종말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종말인 죽음과 종국사적종말로 세상의 끝입니다. 아무도 개인적인 종말을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뤄지는 종국사적종말도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해놓은 시간입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분명히 하나님이 정하신 종말은 분명히 온다는 것은 압니다. 그래서 종말의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깨어있는다는 것은 긴장하면서 생활하는 겁니다. 3 수업생에게 오는 11월에 치러질 수능시험은 알려진 종말의 시간입니다. 어느 부모가 “1주일 남겨놓고 공부하면 돼라고 하겠습니까? 지금부터 매일 긴장하면서 준비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수업생들도 긴장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언제 타락합니까? 어려울 때가 아닙니다. 본인이 생각한 목표지점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사울왕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잘생기고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잡고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교만하기 시작했고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불순종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라를 맡긴 하나님의 음성에 깨어있지 못했습니다.

 

다윗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양들을 지키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늘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왕이 된 이후에도 다윗은 전쟁터를 떠나지 않습니다. 장군들과 함께 고생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부하들이 전쟁을 치루고 있는데 궁궐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난 후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했습니다. 성취에 취해 자기만족에 빠질 때가 잠자는 시간입니다.

겨울을 보내면서 운동을 안했더니 체력도 떨어지고, 다시 게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보통 450분이면 일어납니다. 교회에 오면 510~20분 정도 됩니다. 새벽예배를 준비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6시에 새벽예배를 드리고 과거에는 잠을 안자고 오전을 버텼는데, 요즘은 730분 정도되면 잠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영성과 체력은 함께 갑니다.

 

깨어있는 다는 것은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벅고, 학교가고, 직장가고, 공부를 하고 업무를 처리하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짜여진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에 둔감하게 됩니다.

 

그러면 점점 둔감해집니다. 둔감함은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먼저 찾아옵니다. 영적으로 둔감하게 되어 삶에서 겪게 되는 크고 작은일을 신앙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됩니다. 깨어 있는다는 것은 자고 있는 영적인 민감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누가 신앙이 좋아 보입니까? 신앙생활에는 모순처럼 보입니다. 히스기야왕이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그가 병에 걸릴 때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15년의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 반면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의 육체의 가시는 선교하는데 치명적인 질병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치유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는 히스기야왕과 같은 분이 있고, 바울과 같은 분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히스기야왕은 믿음이 좋고, 바울은 믿음이 없어 보인다고 판단하곤 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왕은 15년의 생명을 연장받고 므낫세이라는 아들을 낳았지만 그 므낫세가 장성하여 왕이 되었는데, 남유다를 망하게 하는 치명적인 왕이 됩니다. 반면 바울은 질병을 치유받지 못했지만 끝까지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사명에 늘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깨어 있는 것은 외형적인 신앙적인 체험이 없지만 내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께 맡기며, 각자의 일터에서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지금이 바로 깨어날 시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2. 어둠의 일을 끊어야 할 시간입니다.(12~13)

12절에 어둠의 일을 벗고(끊어버리자) 하면서 어둠의 일에 대한 것을 13절에서 개략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일은-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일을 중독성이 강합니다. 제가 과거에 잠깐 알게 된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은 경마에 중독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말도 별로 없고, 대인관계도 큰 문제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술도 좋아하지 않고, 기타 유흥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눈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월급을 받은 다음날부터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습니다. 월급을 경마장에서 탕진할 때까지 결근합니다. 이런 일이 몇 달동안 계속되었고 회사로부터 경고를 받았지만 끝내 고치지 못한 채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요즘 말로 하면 성 중독에 빠진 사람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성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중독을 치유하는 영성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서 중독자는 노예를 뜻합니다. 노예는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잃은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중독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물질중독-섭취적중독입니다. 알콜, 담배, 마약, 음식 섭취하면서 등등

과정중독-, 성행위, 도박, 음란물, 게임, 쇼핑,

나는 밥 중독인가? 중독인 것은 파괴적이라는 것입니다. 중독은 관계를 파괴한다고 합니다. 진정한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인데 하나님의 관계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쾌락중독, 어려서부터 성 중독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둠의 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어둠의 일에서 벗어난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은혜를 체험한 이후가 중요합니다.

 

1) 문둔병에 걸린 나아만이 자기 집 계집종으로부터 선지자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이스라엘에 있는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엘리사의 명령을 좇아 요단 강으로 내려가 일곱 번 몸을 씻은 결과 어린이피부처럼 깨끗하게 회복되었습니다.

 

그 때 나아만 장관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다시 엘리사를 찾은 나아만은 자신의 결단을 고백합니다. 왕하 5:17이하

 

앞으로는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그의 결연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그의 결연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만 섬기로 한 나아만은 그 이전에는 전혀 문제로 여기지 않던 것이 앞으로는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조국인 아람의 임금은 림몬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군대장관인 나아만은 왕의 경호에 대한 책임도 지고 있었으므로 연로하여 거둥이 불편한 왕이 신전을 찾아 림몬 신상을 향해 절할 때면 나아만도 왕을 부축하여 함께 절해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앞으로 자신은 하나님만 경외하며 살겠다지만 직책상 어쩔 수 없이 왕을 모시고 우상에게 절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용서해 주시기 원한다는 간구의 말을 남기고 아름으로 귀국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나아만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직책상 어쩔 수 없다는 명분하에 계속 우상에게 절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았을까요?

 

열왕기하 6장에는 나아만의 귀국 후 아람이 이스라엘을 침공한 기사가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당연히 있어야 할 아람의 침공군을 총 지휘해야 할 나아만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아마도 자신의 삶이 옳지 않음을 깨닫고 군대장관직에서 다른 장관직으로 이직하지 않았겠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2) 어둠에서 벗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킵니다. 바울을 부르실 때 행 9:15~16,,,바울은 주님의 이 말씀에 순종하여 일평생 이방인을 위한 사도의 자리, 복음을 위해 받아야 할 고난과 핍박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10여 년 동안 무려 17,000킬로미터를 여행하면서 70개 도시에서 복음을 증거했고, 마침내 로마 제국의 심장인 로마까지 이르렀습니다. 일반인에게 선박과 도보가 고작이었을 2000년 전 당시의 교통수단을 감안하면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초인적닌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 전 여정은 핍박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돌팔매질을 당하고 곤장을 맞으며 감옥에 갇히기가 다반사였습니다. 바울 자신의 고백처럼 춥고, 배고프고, 헐벗고, 고통스런 눈물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회피하거나 포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였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육체는 비록 고통스럽고 괴로울지라도 자기 삶의 자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바라보며 그 자리를 피하기는커녕 도리어 고난 속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더욱 굳건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은 어둠의 일을 벗은 사람입니다.

 

3. 예수의 옷을 입어야 할 시간입니다.(14)

빛의 갑옷을 입자(12)=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13)=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14) 같은 의미입니다.

 

저는 양복을 입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면 양복이 보입니다.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었으면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이 보입니다.

 

같은 내용이지만 비슷하게 표현 말씀이 있습니다.

3:6~10--새사람을 입어라

6:14~17--전신갑주를 입어라

허리 때, 호심경, , 방패, 투구, 검으로 무장//, 진리(14), 복음(15), 믿음(16), 구원, 하나님의 말씀(17)을 뜻하는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서 정육을 위해서=욕심을 위해서,,육신의 일=썩어질 것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설을 보낸 우리들이 새로운 각오와 결단으로 살아는데 도전을 줍니다. 깨어서, 어둠의 일을 끊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으로 무장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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